프로듀스 48 8회 확 뒤바뀐 두번째 순위 생존자 30등까지 알아보기

in #kr-life6 years ago

새벽 맨공 93분(04:52~06:25)

근린공원에 도착하자 귀뚜라미 울음 소리와 수탉의 우렁찬 함성이 가장 먼저 나를 맞아준다. 어젯밤 비가 내리긴 했지만 많이 내리지는 않았는지 공원 흙길이 약간 촉촉할 뿐이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 탓에 조금 선선한 느낌이지만 높은 습도와 함께 여전히 열대야 수준이다.

공원에 도착했을 때는 구름만 잔뜩 덮여 있었다. 공원을 한 바퀴도 채 돌지 않았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 선견지명이 있어 우산을 챙겨와서 천만다행이다. 비를 흠뻑 맞고 싶지만 메모를 위해서 우산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갑자기 비가 내리자 우산을 준비해오지 않은 어르신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우산을 받쳐든 몇 사람만 공원을 걷고 있다. 빗물이 스며들자 흙길은 점점 촉촉해지고 있다. 귀뚜라미와 여러 가지 풀벌레 소리, 받쳐 든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비를 피하기 위해 벤치 아래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고양이 소리 그리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들려오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함께할 뿐이다.

빗줄기가 더욱 거세진다. 바람은 거의 불지 않지만 우산을 쓰고 있어도 옷이 젖어들 정도다. 흙길은 어느새 빗물을 받아들일 수 없는지 여기 저기 물웅덩이를 받쳐들기 시작한다. 오늘 아침 처음 흙을 밟았을 때와는 전혀 다른 이 느낌은 비가 이렇게 많이 내리지 않는다면 결코 맛볼 수 없다. 발바닥을 감싸주며 발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올라오는 부드러운 흙의 감촉을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언제 느껴볼 수 있을까.

혼자 누리기엔 아까운 선물이다. 이 맛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새벽 우중 맨발 걷기를 마다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편안함과 재미를 추구한다. 행복, 편안함, 재미를 느끼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비에 촉촉하게 젖은 대지가 전해주는 선물을 받으려면 새벽에 일어나야 하고, 쏟아지는 빗줄기에 옷이 젖어야 하며, 발에 빗물과 흙이 묻어나야 한다. 새벽에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있을 때의 편안함을 누리며 만족한다면 새벽이 주는 자연의 선물은 포기해야 한다.

세찬 빗줄기 속을 헤치고 맨발로 뛰어본다. 천천히 걸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맛본다. 흙을 밟는 강도가 강해지자 발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올라오는 흙반죽의 속도도 빨라진다. 공원 전체를 돌지 않고 부드러운 흙이 있는 구역만 계속 오가며 걷거나 뛰기를 반복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이런 기회가 자주 오지 않기에 마음껏 누리고자 한다.

평평하던 흙길이 내가 남긴 발자국으로 인해 옛날 전쟁터의 말발굽 자국처럼 파헤쳐졌다. 일그러진 흙길에게 미안하다. 폭염과 가뭄 속에 지친 몸을 누이고 모처럼 갈증을 해소하며 편히 쉬고 있었는데 내가 이렇게 밟아 놓았으니 말이다. 미안하고 고맙다.

하지만 괜찮다. 내가 남긴 발자국은 악의를 갖고 상대를 죽이려는 마음이 담겨 있지 않다. 내 발은 맨발이다. 전투화는 물론 운동화도 양말도 신지 않은, 말 그대로 무장해제 상태다. 전쟁이 아닌 평화를 상징한다. 어떤 마음으로 발자국을 남기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 나는 대지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평화를 기원하며 마음을 열고 서로 교감하고 있다. 어머니의 땅인 대지가 전해주는 맑은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아들여 내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고 다시 하늘로 전해주고 있다.

다시 공원 전체를 맨발로 걷고 있다. 세차게 내리던 빗줄기도 잦아들어 귀뚜라미와 풀벌레 소리가 다시 공원을 잔잔하게 채우고 있다. 천천히 공원을 둘러보며 걷는다. 빗물을 머금고 있는 남천 가지에 등불이 하나 매달려 있다.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메꽃이다. 메꽃 줄기가 남천 가지를 휘감고 올라가 등불처럼 꽃을 피우고 있다. 빗줄기가 약해지자 참새들도 일어나 허기를 채우느라 나뭇가지를 이리 저리 날아다니고 있는 평온한 아침이다. 여기서 아침 맨발 걷기를 마무리한다.

감사합니다.
폭염과 열대야가 계속되는 가운데 모처럼 비가 내렸습니다. 비 덕분에 새벽이 주는 멋진 자연의 선물을 받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

집을 나설 때는 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우산을 챙겨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셔서 맨발 걷기를 하며 비를 맞지 않고 메모를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면서 행복을 느끼고 이를 마음껏 누리는 체험을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세상 모든 존재는 매 순간 쓰임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유.불리를 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를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침 맨발 걷기를 마치고 아파트에 도착했습니다. 참으로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평온한 아침을 맞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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