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기] 그날,바다

in #movie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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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가기] 그날, 바다


집 가까이에 CGV가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알았다고 할 수도 없다.
집으로 향할 때 서너 번에 한 번쯤은 늘 정지하게 되는 신호등 왼편에 얌전하게 극장이 있었지만 예전처럼 영화를 홍보하는 눈에 띄는 대형 수제간판도 없고 보니 작은 포스터들 몇 개가 나란히 붙여진 극장 초입은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신호대기 중 으레 두리번거리다 몇 번씩 그 포스터들로 눈길을 주지만 왕복 6차선 맞은편 차선에서 단번에 최근 상영작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관심도 시력도 흐릿해진지 이미 오래다. 솔직히 이제 더 이상 극장을 찾아 볼 영화들이 있겠는가 싶었다.

그렇게 있은 듯 없는 듯 했던 영화관이 최근 <1987>이란 영화를 보기 위해 이용하게 되면서 소도시의 한물간 동네라는 천혜의 지정학적 특징과 CGV라는 네임밸류가 합쳐지면서 한산하기 이를 데 없을 뿐더러 쾌적하고 큰 스크린이 예술영화전용관의 퀴퀴한 냄새들로부터도 자유로운 거의 나만을 위한 영화관이 될 수 있겠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젠 내가 보고 싶어 하는 영화들만 걸려준다면 주말을 피한 평일의 한산한 시간대는 명실상부한 나만의 전용관이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두 번째 영화 <그날, 바다>와 만났다.
들어서는 순간 텅 빈 126석, 적당히 크기의 스크린. 야호!

대략 가운데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아저씨 하나 입장(이 아저씨는 한산한 매표소에서 아프리카 망치부인 방송을 보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또 아저씨 하나 이렇게 나까지 아저씨 셋이서 이 영화를 보는구나 하는 찰나에 팝콘으로 무장한 이십대 아가씨 둘이 계단을 오르더니 성큼성큼 자리를 가늠하면서 나에게 다가온다.
"이 자린가요?" "네."
일어나 맨 뒷자리로 간다. 아담한 상영관이라 스크린이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영화의 제작자는 김어준이다. 참 많은 일을 해 냈고 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통령과 지금의 정국이 있었겠는가 싶을 정도다. 전형적인 B급 비주얼과 B급 감수성을 표방하면서도 A급 주류들이 감히 해내지 못한 많은 정치적, 역사적 과오들을 바로잡고 고발했다.

특히 세금도둑 이명박 전대통령을 구속수감케 만든 일등공신이라는 것엔 좌우진영 모두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런 그가 세월호의 침몰 원인을 물고 늘어지면서 만들어낸 결실이 이 영화다. 한겨레 파파이스를 본 분들이라면 낯설지 않을 김지영 감독의 열정과 김어준의 뚝심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다.

숨 가쁘고 격앙되고 혼란스럽게 전해지던 뉴스 속의 세월호 참사를 차분히 시간대별로 마주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15세 관람가가 말해주듯 AIS 항법장치 등에 짓눌려 복잡하게 느껴지던 정보들을 일목요연하고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해준다.

한 표 팔아줘야겠다는 마음으로 갔다가 꽤 완성도 있게 잘 만든 영화에 커튼콜까지 청소하는 아줌마의 눈총을 받으며 혼자서 끝까지 앉아 있었다. 덕분에 인정옥의 이름까지 확인한 것은 덤.

이제 극장에 걸릴 날이 아마 2-3일 남았을 것이다.
기회 되시면 꼭 극장에서 차분히 한 번 보길 권한다. 또한 약 두시간의 런닝타임은 방광이 작은 나같은 사람이라면 마지막 몰입을 방해할 수도 있다. 꼭 비우고 보시길...
물론 영화 뒤의 누가 왜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런 엄청난 짓을 기획했는지에 대한 답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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