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를 그리다) 산티아고 길은 혼자 걷은 것보다는 같이 걷는 것이 더 좋다.

in #tripsteem5 years ago (edited)

image

산티아고에서는 산행을 할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산티아고를 처음 시작하는 지점인 '생장'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하는 것이 아마도 가장 큰 산행일 것이다.
산맥을 넘는 산행이니 그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험하고 고단한 산행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 산행에서 산티아고의 매운맛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DB9BCD23-2F1B-447E-8F02-0EF06C4E337E.jpg

그리고 두번째 산행에 속하는 코스가 오늘 우리가 넘는 길이다.
1500미터 정상을 꼴딱 넘어야 하는 것이라서 눈에 보이는 건 겹겹히 겹쳐진 산들이다.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도 날씨가 변화무쌍하지만 여기 1500고지를 넘을 때도 날씨는 한치 앞을 예상할 수가 없다.
피레네 산맥의 악명을 피해 그 산을 넘지 않은 우리는 불가피하게 여기에서 산을 넘어야 하는 산티아고 길의 험난함을 경험할 수 있었다.
조금 춥고 힘들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는 생각은 든다.

BA463761-B952-4849-8A1F-4D2BD7B8C4A3.jpg

F6C65D9A-5A06-4581-9747-CED780B3270C.jpg

겹겹히 펼쳐진 산들을 보며 걷다보니 하늘이 조금 열린 사이로 첫 마을이 보인다.
그 마을에서 우리가 들어간 카페는 벽난로도 있었다. 그리고 벽난로에 나무를 떼고 있어서 가게 안이 훈훈했다.
다시 말하지만 며칠 전까지 스페인은 30도를 훌쩍 넘는 이상기온으로 연일 뉴스에서 날씨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산 정상의 카페에서는 순례객들의 언 몸을 풀어주기 위해서 연신 벽난로에 나무를 떼고 있는 것이었다.
예상할 수 없는 날씨 변화이다.

몇몇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산을 넘었는데, 아마도 며칠 동안 너무 더운 날씨였어서 긴바지를 준비하지 않았는지 반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탔나보다.
허벅지가 벌겋게 얼어서 잘 걷지도 못하고 비를 맞아 신발도 양말도 모두 젖어 있었다.
꽁꽁 언 다리로 어기적거리며 걸어 벽난로 앞으로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우리만 예상하지 못한 날씨가 아니었던 것이다.

카페에서 파는 스페인 오물렛은 그동안 먹었던 것과 다른 형태이다.
우리가 아주 긴 거리를 걷고 있는 것을 이런 데서도 실감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 이렇게 행정구역이 다른 곳을 가면 같은 김치 종류라도 그 맛이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스페인의 음식도 같은 이름이지만 요리의 형태와 맛이 천차만별로 변한다.
이곳의 오물렛 맛은 거의 피자 맛이다.
우리는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이 오물렛과 추운 몸을 데워줄 와인을 마셨다.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뭐든 몸을 따뜻하게 해줄 것이 필요할 정도로 추웠다.

카페에서 우리보다 먼저 와서 몸을 녹이고 있던 분은 한국분이었다.
여자분 혼자서 산티아고 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카페에서는 몸을 녹이느라 정신이 없어서 간단히 인사만 나누고, 길을 나서니 다시 만나 우리는 대화할 시간이 생겼다.

CBCE36B0-4412-4793-86A3-A93F707315F2.jpg

부산에서 오신 유현숙씨였다. 생장부터 걷기 시작했는데, 힘이 들어서 하루에 많이씩 못 걷는다고 했다.
보통 우리랑 함께 걷는 사람들은 6월 7일이나 8일에 생장에서 출발한 사람들인데, 유현숙씨는 6월 5일에 출발했는데 이제 겨우 우리와 같은 곳을 걷고 있으니 정말로 많이 천천히 걷는 분이시다.
계속 혼자 다닌 탓인지 그리 대화를 길게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산티아고 길은 각자의 짐을 지고 각자의 길을 걸어내야 하는 길이기 때문에 혼자 걷든 여럿이 걷든 자기에게 주어진 길은 오로지 자기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혼자 이 길을 걷는 것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혼자 걷는 사람도 꽤 많이 있는데, 난 항상 그들에세서 외로움같은 것이 느껴진다.
800킬로를 오로지 내 발로 걸어야 하는 것도 꽤나 큰 인내심이 필요하고, 자기와 정면 승부를 해야 하는 여행이다.
그런 길에서 꼭 필요한 것은 같이 공감해줄 친구이다.
혼자서도 다른 여행자들과 잘 어울리면이야 좋겠지만, 예기치 않는 순간에 훅 들어오는 외로움마저도 여행의 일부로 즐기기 위해서는 동지가 필요하다.

혼자 걸으면 오로지 혼자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럿이 걸어도 산티아고 길에서는 자기만의 생각을 할 시간이 차고 넘친다.
그리고 실상은 걷는게 너무 힘들어서 잡다한 생각은 거의 나지 않는 시간이 계속 된다.

또한 여행을 하면서 생각을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생각을 함께 나누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한달을 혼자 걸으면서 많은 생각만 하고 그것을 잘 표현해 보지 않아, 여행을 마치고 “아, 산티아고는 참 멋지구나.”하는 간단한 생각만 남아 있을 수 있다.
한달 동안 보는 풍경, 만나는 사람, 자신의 상태, 남들과 나누는 즐거운 대화나 식사 등에서 너무나 많은 표현을 하고 지내다 보면 여행 후 내게 남은 산티아고는 더 풍부해질 것이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 동지가 있는 여행이 더 나은 듯하다.
산티아고에서 함께 걸은 사람과의 사이에서 생긴 동지애는 쉽게 얻을 수도 잊혀지지도 않는 큰 선물이었다.

이 글은 2017년 6월 10일부터 7월 8일까지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우리 부부의 찬란한 추억이 담긴 글입니다. 사진은 대부분 남편(@lager68)이 찍었습니다. 글은 제가 썼는데 많이 미숙한 글입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산티아고를 그리다) 산티아고 길은 혼자 걷은 것보다는 같이 걷는 것이 더 좋다.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

image

Sort:  

캬, 외국에서 한국 사람 만나면 진짜 대박이져 ㅋㅋㅋㅋ

요즘은 외국 왠만한 관광지에 한국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은 거 같아요.ㅋ

아 그래요? ㅎㅎㅎㅎㅎ 그정돈가? ㅎㅎㅎ 저도 전에 유모차 부대보고 놀랬습니다. ㅎㅎㅎㅎ

Gghite님 산티아고 순례 이야기 화수분 같아 다음을또기다릴레요

Posted using Partiko Android

산티아고를 걷는 한달간 정말로 많은 경험을 했거든요.
좋은 여행이었습니다.^^

Hi @gghite!

Your post was upvoted by @steem-ua, new Steem dApp, using UserAuthority for algorithmic post curation!
Your UA account score is currently 3.638 which ranks you at #5780 across all Steem accounts.
Your rank has dropped 8 places in the last three days (old rank 5772).

In our last Algorithmic Curation Round, consisting of 222 contributions, your post is ranked at #171.

Evaluation of your UA score:
  • You're on the right track, try to gather more followers.
  • The readers like your work!
  • Try to improve on your user engagement! The more interesting interaction in the comments of your post, the better!

Feel free to join our @steem-ua Discord server

Congratulations @gghite! You have completed the following achievement on the Steem blockchain and have been rewarded with new badge(s) :

You published a post every day of the week

You can view your badges on your Steem Board and compare to others on the Steem Ranking
If you no longer want to receive notifications, reply to this comment with the word STOP

To support your work, I also upvoted your post!

Do not miss the last post from @steemitboard:

3 years on Steem - The distribution of commemorative badges has begun!
Happy Birthday! The Steem blockchain is running for 3 years.
Vote for @Steemitboard as a witness to get one more award and increased upvotes!

저길 혼자 간다고 생각만 해도 아찔하네요...

그러니 산티아고는 가능하면 함께 걷는 사람이 있어야 해요.
너무 다리가 아파서 뒤쳐지다가 저런 비바람 속에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될 수도 있거든요.

따로 또 같이...나름
의미가 있지요.^^

긴 여정이라 외로움은 기본으로 깔고 가야한답니다.

kr-series 함께 응원합니다~♩♬
행복한 ♥ 오늘 보내셔용~^^

Posted using Partiko Android

감사합니다.^^

혼자오신분들도 많다던데
멋지신 분이네요~

전 혼자는 못갈거 같아요;;;;;

산티아고는 혼자가도 함께 하는 것들이 많아요.
공동 침실, 공동 화장실, 공동 샤워장, 공동 빨래방, 공동 식당....
혼자이기 힘든 구조이죠.ㅋ

스페니쉬 오믈렛 참먹어본지 오래내요.^^
이탈리아식 오믈렛 "프리타타" 는 저 무지 잘만드는데.ㅋㅋㅋ
슬슬 외국으로 또 어딘가 가시고 싶지않으세요?

이탈리아식 오믈렛을 '프리타타'라고 부르는군요.
은근 곤님 아는 거 많으세요.ㅋㅋ

왜 아니겠어요. 어딘가 가고 싶어서 몸살을 앓고 있는 듯합니다...ㅜㅜ

Coin Marketplace

STEEM 0.24
TRX 0.11
JST 0.032
BTC 62187.20
ETH 3051.46
USDT 1.00
SBD 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