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mp of the day - 20210803

SCT 잔고 유지하는 것 꽤 번거롭네요.
다음 자동화 타겟으로 삼아야겠습니다.
2017년, 한국에서도 '햄버거병'이 발병한 적이 있었다. 맥도날드에서 불고기버거를 먹은 어린이가 용혈성 요독 증후군에 걸린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렇다 할 물증이 없고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불기소처분으로 사건을 끝냈다.
피해어린이 부모와 '정치하는엄마들'의 활동가들은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기울였고, 2019년엔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은 맥도날드 전 팀장이 JTBC와의 인터뷰에서 "'덜 익은 패티는 없었다'는 취지로 검찰에 허위진술을 했다"고 밝히며 파장이 일기도 했다.
그 해, 2019년 대검 국정감사에서 표창원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게 사건의 재조사를 촉구했다. 당시 윤 총장은 "실제 허위교사가 있었다면 재조사를 안 할 이유가 없다"고 답했고, 5일만에 검찰은 재조사에 착수했다. 재조사 시작 20일 만에, 한국맥도날드는 피해어린이측과 의료 비용을 지원해주기로 합의했다.
난 윤석열의 햄버거 비유를 들으며, 2019년 재조사 착수를 결정하던 순간의 검찰을 생각했다. 그때에도 윤석열은 '햄버거 50전짜리에 5불짜리 위생 퀄리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감히?
그리고 어쩌면, 어쩌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막을 수도 있었을 수많은 순간마다, 검찰 조직 어디에선가는 "이 단속은 별로 가벌성이 높지도 않고 안하는 게 맞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미쳤다.
삼풍 백화점 자리에 지어진 아파트에 살고, 삼풍백화점 붕괴 일자에 대선출마 선언을 한 윤석열이 규제철폐를 외치는 것을 보면 속이 답답해집니다.
지난 7월 27일, 도쿄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이 된 서핑의 남자 결승전을 중계하던 KBS 해설위원이 금메달을 딴 브라질의 이탈로 페레이라 선수를 설명하며, 그가 ‘빈민가 출신’임에도 이런 ‘성공’을 이뤄낸 것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덧붙였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듣고 힘을 낼 사람들이 있을 순 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하는 지점은 이런 이야기가 반복됨으로써 가난과 빈민이 쉽게 대상화될 뿐만 아니라, 가난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개인의 ‘능력’으로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게 된다는 부분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식의 여론조사와 보도들이 터져 나오면서 이재용 씨가 만기 출소하는 것은 아예 선택지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진짜 여론조사라면 이재용의 만기 출소에 대해서 가부를 묻거나 적어도 선택지로 제시했어야지.
‘공적인(public)’ 것과의 대립적 개념으로서 사적인(private)’ 것을 뜻하는 개념이지만, 다른 영역에선 대부분 ‘공-사 (public-private)’ 관계의 개념에 따라 ‘사(私)’로 옮기는 번역을 ‘민영화’에서만 따르지 않았다. 이는 1990년대 정부-기업-언론-학계의 신자유주의 추진 동맹체가 의해 만든 다분히 의도적인 작명이다. 사유화나 사영화가 아니라 민영화라 부름으로써 공공영역에 대한 공격과 사적 탈취를 마치 반독재나 반독점, 탈권위주의적인 과정으로 보이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민영화’라 부르지 말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언어에는 사회적 세력 관계가 반영돼 있고, 현실에서 사유화, 시장화, 자유화를 지지하는 세력의 힘이 여전히 센 까닭에, 그대로 민영화로 불린다.
...
최소 비용과 최대 이익을 추구하는 수익성의 논리가 공공영역에 도입됐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그동안 수많은 사례가 입증했다. 주민 수가 적고 이용률이 낮은 우체국이 폐쇄됐고, 철도역과 버스 노선이 사라졌으며, 수익성이 떨어지는 탁아소와 학교와 병원이 문을 닫았다. 사고가 잦아졌고 복구는 제대로 되지 않았다. 전력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전기는 가난한 지역부터 가장 먼저 끊기고, 가장 나중에 복구됐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여성 혐오주의자들의 ‘페미니스트 검증’에 이러한 승리의 경험을 만들어줬던 건 다름 아닌 언론이었다. 언론은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취재원으로 해 그들의 주장을 여과 없이 따옴표로 옮겼다. 언론으로 옮겨진 주장은 인터넷에 떠돌 때와 달리 공론장에 입성할 권위와 영향력을 지니게 된다. 온라인에서 허물어질 수도 있었던 이러한 여러 페미니스트 논란들은 언론에 오르내리며 하나의 ‘세력화한 의견’이 됐고, 혐오를 기반으로 한 온라인 폭력에 정당성을 만들어주는 계기가 됐다.
민주주의 시민의 역할 계속 강조할 수밖에 없다. 정치인은 안 그런 것 같지만 시민의 눈치를 많이 살핀다. 박근혜 탄핵 당시 새누리당은 복지부동했고, 민주당은 질서 있는 퇴각을 요구하며 온건한 모습을 보였다. 이때 시민들이 광장에 나가 훨씬 더 급진적인 요구를 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시민이 제대로 조직돼 강력하게 요구하면 권력은 이를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목격했다.
(‘오보 장사’를 하는) 언론에 대해 ‘클릭 수가 확보가 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 기사를 클릭하는 독자의 저의에도 ‘기레기를 만든 책임’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
어찌됐든 한국 사회는 형식적으로나마 분명한 민주주의 사회이고 시민은 형식적으로나마 이 사회의 주인이다. 주인이라는 말은 변화를 만들 권리가 있다는 것이고, 동시에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내가 이 사회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시민들에게 설득하고 또 설득하다 보면 하나의 조직이 생기고 그러면 하나의 변화를 만들 주체들이 생긴다. 또 뻔한 말이지만, 결국 사회는 그런 식으로 변해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 사실을 겸허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말을 하면 다 말인줄 아는 건지…
에혀… 저런 사람이 저런 위치에 있다는게 참 부끄럽습니다.
검찰에는 비슷한 사람이 많지 않을까 하는 편견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