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잡상 20편 - 나폴레옹 1,2,3세

in #kr8 years ago

알아두면 쓸데있을 잡다한 상식 20편입니다.

오늘은 나폴레옹의 숨겨진 가족관계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 요즘 프랑스 사진을 보다보니 갑자기 콩가루집안(?)이었던 나폴레옹의 이야기가 문뜩 떠오르더군요. 그래서 준비해보았습니다.


설명이 필요 없는 나폴레옹 1세

naver_com_20140505_134207.jpg

따로 설명이 필요없겠죠? 우리가 흔히 말하면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나폴레옹입니다. 그는 8남매중에 둘째로 태어났는데요. 하급귀족에서 시작해 온갖 전투를 다 이겨가며 끝끝내 프랑스 황제가 되었지만 결국 수많은 적들에게 패배해 조그마한 섬에서 생을 마친 파란만장한 인물입니다. 보통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이 있으면 이 사람을 떠올리면 될정도로 아주 유명한 사람입니다. 참고로 원래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즉 보나파라트는 성이고 나폴레옹은 이름이었는데요.

나폴레옹은 황야의 사자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멋진 이름이네요. ^^

이 사람이 너무 유명해지는 바람에 가문의 성을 보나파르트에서 나폴레옹으로 바꿔버렸다고 합니다. 보나파르트 가문의 사람들은 이제 나폴레옹을 성으로 사용하지요.

잘 안알려진 나폴레옹 2세

그럼 나폴레옹은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나폴레옹의 부인은 조세핀이라는 아주 유명한 부인을 두고 있었지요. 그녀는 사교계의 스타였고, 이미 나폴레옹과 결혼하기전에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이혼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300px-Josephine_de_Beauharnais,_Keizerin_der_Fransen.jpg

나폴레옹의 첫번째 부인 조세핀 드 보아르네

그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두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외젠 드 보아르네와 오르탕스 드 보아르네 였습니다.

300px-EugeneBeau.jpg

나폴레옹의 식구 중에 비록 친자식은 아니었지만 가장 능력이 좋았다고 평가받는 외젠 드 보아르네 입니다. 그가 진짜 나폴레옹의 아들이었다면 아마 역사가 바뀌었을꺼라고 하더군요.

300px-Hortense_de_beauharnais.jpg

나폴레옹의 의붓딸 오르탕스 드 보아르네. 이분은 잘 기억해두세요 ^^

하여간 조세핀과 나폴레옹의 사이는 좋았지만 슬하의 자식을 낳지는 못했습니다. 이게 불화의 원인이 되어 이혼까지 가게됩니다. 나폴레옹은 조세핀을 탓했고, 조세핀은 나폴레옹을 탓했지요. 그리고 결국 나폴레옹이 조세핀을 버림으로써 파경을 맞이하게 됩니다.

조세핀은 아이를 둘이나 낳았고, 나폴레옹도 사생아는 물론 직접 아들까지 봤으니, 누구 잘못인지는..... 그래도 이혼했어도 잘 챙겨주었다고 합니다.

한편 나폴레옹은 자신의 아들을 낳아 황태자로 삼으려고 했고, 첫번째 후보로는 당시 프랑스와 평화협정을 맺은 러시아의 안나공주와의 결혼을 추진했으나 러시아의 강한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Портрет_великой_княжны_Анны_Павловны._Неизвестный_автор._Холст,_масло._Копия_XIX_века..jpg

당시 황제였던 알렉산드르 1세의 막내동생이었습니다. 후에 네덜란드 왕실로 시집가서 잘 살았다고 하네요.

한편 그렇게 되자 나폴레옹이 택한 사람은 당시 나폴레옹한테 된통 당해서 찍소리도 못하고 있던 오스트리아였습니다.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1세의 장녀 마리 루이즈와의 결혼을 추진한 것이었죠.

13946155583_e385bfc147_b.jpg

나폴레옹에게 항복하는 프란츠 1세입니다.

오스트리아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같은 이야기였습니다만 이미 나폴레옹한테 너무 당해서 더 이상 저항할 힘이 없었던 오스트리아는 결국 나폴레옹에게 공주를 내어주어야했습니다.

684px-Napoleon_Marie_Louise_Marriage.jpg

나폴레옹과 마리 루이즈의 결혼 그림입니다.

나폴레옹과 마리 루이즈는 22세 차이나 났고, 나폴레옹과 장인 프란츠 1세는 1살 차이였다고 하니-프란츠 1세가 1살더 많습니다.-옛날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너무 하죠? 그래도 나폴레옹은 마리 루이즈를 많이 챙겨주었고, 마리 루이즈 역시 나폴레옹에게 마음을 살짝 열고 서로 어느 정도 사랑이 싹 텄습니다. 그리고 마리 루이즈는 나폴레옹이 그렇게 기다리던 아들을 낳게 됩니다.

François_Pascal_Simon_Gérard_004b.jpg

마리 루이즈와 그녀가 낳은 나폴레옹의 아들

나폴레옹은 바로 그 아이를 자신의 황태자 겸 로마왕으로 봉합니다. 바로 나폴레옹 2세가 되는 나폴레옹 프랑수아 조세프 샤를 보나파르트입니다. 이름 참 길죠? ^^ 나폴레옹의 아들이었으니 금수저 중의 금수저로 태어났지만 얼마 안가 불행이 닥칩니다. 바로 나폴레옹의 몰락이 시작되었던것이죠. 그의 나이 3살때 나폴레옹은 독일 동부 라이프치히에서 러시아-오스트리아-프로이센 군대에게 패배해 결국 황제 자리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리고 마리 루이즈와 나폴레옹 2세는 프란츠 1세의 오스트리아로 가게됩니다. 처음에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나폴레옹 2세를 어떻게 대해야하나 많은 고민을 했지만, 손자를 싫어하는 할아버지가 없듯이 프란츠 1세는 나폴레옹 2세를 아주 귀여워 했다고 합니다.

300px-Le_duc_de_Reichstadt.jpg

그렇게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컸지만 안타깝게도 어머니와의 사이는 좋지 않았으니, 어머니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나폴레옹 2세를 거의 버리다싶이 했다는군요. 그래서 더욱더 아버지를 쫓아가려고 노력했으나 아버지 만큼의 재능은 없었고, 성인이 되어 군대에 입대한 후에 무리하게 훈련을 하다가 결핵에 걸려 21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됩니다. 사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무덤에 묻혔으나, 뜬금없이 2차 세계대전 중에 프랑스를 점령한 히틀러가 나폴레옹 2세의 유해를 오스트리아에서 가져다가 파리에 묻혀있던 아버지 나폴레옹 곁에 같이 묻었다고 합니다.

invalides.jpg

나폴레옹의 관을 내려다보는 히틀러의 사진입니다.

비록 많은 시간을 아버지와 보내지 못했지만 죽어서는 같은 곳에 묻혔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요?


좀 알려진 나폴레옹 3세

나폴레옹 3세는 역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조금 알만한 사람입니다. 프랑스의 첫 대통령이자, 3대황제가 된 인물로 우리에게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패배해 굴욕을 겪었던 인물로 알려져 있지요.

Franz_Xaver_Winterhalter_Napoleon_III.jpg

이렇게 당당한 이미지 보다는

8a8e5328b43751d15e132874d6bce1cb.jpg

이런 이미지로 많이 알려져 있지요 ㅠ

그는 나폴레옹의 직계 후손은 아닙니다만 출신이 나폴레옹과 조금 관계가 있었죠.

300px-Hortense_de_beauharnais.jpg

아까 전에 보았던 나폴레옹의 의붓딸 오르탕스 드 보아르네와

images.jpg

나폴레옹의 형 루이 보나파르트 부부 간의 자식입니다.

이 무슨 족보인가요? 우리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안가는 조합이기는 한데, 삼촌과 결혼한 셈이군요. 근데 이 루이 보나파르트와 오르탕스의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고, 그 당시부터 대놓고 서로 바람을 필정도로 가족 사이가 심각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 둘 사이에서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즉 나폴레옹 3세가 태어났고, 나폴레옹 3세는 이를 어필했습니다. 즉 나폴레옹의 손자라고 선전했던 것이죠. ^^ 거기에 보나파르트 가문 소속이기도 하니까 나폴레옹의 손자 겸 조카라고 해야할까요. 뭐라 표현하기 힘드네요 ㅎㅎ

하여간 이 나폴레옹 3세는 할아버지 겸 삼촌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나, 나폴레옹 사후 프랑스는 다시 왕정으로 돌아가 이 보나파르트 가문을 철저히 견제 감시했기 때문에 쉽지 않았습니다. 한번 기회를 잡고 반란을 일으키려 했으나 발각 되어 감옥에 갔고, 감옥에서 극적으로 탈출해 프랑스가 아닌 외국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1848년 2월 혁명으로 프랑스 왕정이 무너지자 귀국하여서 '나폴레옹의 후계자' '나폴레옹의 영광을 다시 한번' 이런식으로 대대적인 홍보를 하며 정치계에 데뷔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폴레옹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었던 프랑스 농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그를 반대하던 부르주아 및 도시민들을 누르고 프랑스의 첫 대통령이 됩니다.

처음에는 그를 무시하던 다른 정치인들도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에 눌려 그를 반대하지 못했고, 사람 자체는 워낙 매력적인 인물이라 -별명이 '인간 아편'이라고 합니다- 그가 말로 회유하면 안 넘어가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했으니 ^^; 그러나 점차 정책 실패로 약점이 하나둘 노출되기 시작했고, 그렇게 정치계에서 쫓겨나나 했으나, 나폴레옹 1세가 그랬던 것처럼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고 스스로 황제가 됩니다.

그리고 황제가 된 이후로는 제국주의 정책을 펼쳐 아편전쟁에도 참여하고, 베트남을 침공하고, 멕시코에도 군대를 보내고, 이탈리아 통일 전쟁에도 한발 들여놓고, 아프리카에서는 영국과 식민지 경쟁을 벌이고, 심지어는 우리나라에도 군대를 보내 병인양요를 일으키죠.

c8joqit94873mprkolbb647eli.png

강화도에 상륙한 프랑스 병력들

그리고 내부로는 안 어울게도 복지 정책을 펼쳐 빵값을 안정시키고, 또 극빈층을 돕는 복지제도를 신설하고, 노동자들을 위한 주택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1pceetoil5.jpg

그리고 파리 도시계획을 새로 짜서 지금의 파리 모습으로 바꿔놓은것도 이때라고 합니다. 개선문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넓은 도로를 내고, 낡은 건물들은 철거하고, 세느강을 따라 화려한 장식을한 다리를 놓은것도 이때라고 하지요. 그렇게 흔히 말하는 벨 에포크 시절의 전성기가 그의 임기 중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정책은 통일을 이루고 강력하게 뻗어나오던 프로이센과 부딫치게 되고, 결국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패배한 후 프로이센 군에게 포로로 잡히게 됩니다. 그후 그의 황제자리는 없어졌고, 결국 프랑스로도 돌아가지 못한채 영국으로 망명 거기서 최후를 맞이했다고 합니다.


대반전은?

그런데 한가지 재미난 사실이 최근 연구 결과로 밝혀졌습니다. 바로 나폴레옹 3세와 나폴레옹 간의 아무런 유전적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죠. 나폴레옹의 유전자와 나폴레옹 3세의 유전자를 비교해본 결과 아무 사이도 아닐정도로 유전적으로 먼 사이였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습니다. 즉 오르탕스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펴서 낳은 아들이라는 것이지요. 누구 아들인지는 여러 후보군이 있다고 합니다만 특정 짓기는 어렵다고 하니 단지 나폴레옹의 이름만 빌렸다고 해야할지도....

하여간 파란 만장한 가계도를 가진 나폴레옹 집안. 아직도 후손들이 남아 프랑스 황제를 지칭하고 있다고 합니다. 찾아보니 나폴레옹 7세까지 있다고 하네요. 나폴레옹 7세는 1986년 생으로 뉴욕에서 모건 스탠리 은행에서 애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NISI20150618_0011069675_web.jpg

사진에서 제일 큰 키의 사람이 나폴레옹 7세 장-크리스토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라고 합니다.

Sort:  

예수다음으로 초상화가 많은 남자, 나폴레옹이 그 레옹이었군요. 사자. .조세핀 밖에 몰랐는데...대단하네요 7세까지....역사에 관심 있으면서도 나폴레옹은 [전쟁과 평화]밖에 생각 안나는군요... 정보 감사해요.. 일단 팔로우해요

유명한 나폴레옹만 알죠 ^^ 이름은 참 멋진거 같아요 황야의 사자

흔히 알려진 나폴레옹만 알았지 그 후손들은 처음 보네요ㅋ 신기한 비하인드까지ㅋ 재미있는 정보 잘 보고 갑니다~~

대부분 나폴레옹만 알죠 ^^ 아무래도 그 후에 사람들은 업적이 그다지 많지 않아서 ㅠ

한주의 시작!
따뜻한 커피한잔으로 시작해요~^^

따뜻한 카페모카 마시고 싶네요 ^^ ㅋ

Coin Marketplace

STEEM 0.04
TRX 0.33
JST 0.080
BTC 62014.14
ETH 1664.68
USDT 1.00
SBD 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