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업/노자규

in #school6 years ago (edited)

마지막 수업
출처 : 노자규의 .. | 블로그
http://naver.me/5ycISBZR
마지막 수업

“상수야
니 국어책 와이런노...“

“어제 똥누고 변소깐에
깜박하고 놔두고 왔더니
우리집 개가 이리 다 물어뜯어놨다아이가 “

“그라먼 산수책은...왜 이리 얇아진건데”

“그건..좀 말하기 곤란하다”

“와 억수로 비밀이라도 있나보네...”

“그래 내가 집에가다 똥딱기 했다

문디 가시나 별기 다 궁금한갑다“

“얼레리클레리
얼레리 클레리.....상수책은, 똥닦이래요”

이소리는
포근하게 내려앉은 운동장과
아늑한 책상이 좁다란 풍금과
나란히 놓여있는 조그만 산골마을
하늘 아래 첫 분교에 학생들이
교실에서 자습하다 떠 더는 소리입니다

고운 하늘 동산 마루에
걸터앉은 태양이
꽃구름을 허리에 두르고
이름 모를
풀벌레들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면
고요한 아침이
열리며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올 29살이 꽃띠 나이에
임용고시 합격 후 떠난 여행길에서
민박을 하며 3일을 머물게 되었고
그때 만난 아이들이
자습시간에 떠 더는 이 아이들입니다

“꼭 선생님이 되가
우리 얼랄들 좀 갈카주이소”라는
아이 엄마아빠들의 간절한 눈빛과

“우리 쌤이 되어주이쇼....“
“ 라는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라
전교생이라곤 11명이 전부인
이곳으로 지원해서 오게 되었답니다

수업 첫날
아이들의 대답은
지금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에게
궁금한게 있어면 물어볼래“

“왜 선생님은
이리 작은 학교로 오셨어예”

“니네들 하고
한여름밤에 느티나무 아래서
한 약속을 지키려구...
그리고
이런 작은세상에 사는 너네들이
궁금하기도 해서..“

“또 가실거지예...“

“너네들과
먼나라 여행을 끝마칠 때 까지는 안갈건데..”

“그라먼
우리 시집장가갈때까지 있을거지예”

선생님으로서
아이들과의 첫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였습니다

"철민이는 왜 숙제를 안해왔니“

“어제 아버지가
소가 아파 읍에 가시면서 산에 가서
풀베서 소죽 끓여놓라캐서
못했심니더.."

"순석이 넌..."

"감자심고 밭에 거름준다꼬예..."

이렇게 아이들은
논과 밭으로 바쁜 엄마 아빠를 대신해
삶의 체험들을 해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마을에서 유일한 놀이터가 학교이기 때문에
방학이 되어도 학교에 나온답니다

"매일 학교에 와서는 풍금을 치는 아이"

"소를 끌고 와서 철봉에 매어놓고
운동장에서 공놀이 하는 아이 "

조각조각 흘러가는 구름아래서
행복을 주워 담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제 선택에 기쁨을 느끼곤 한답니다

참!
이학교에도 무료급식이 나온답니다
햇님이 하늘 정가운데에 올 시간이 되면
그날 당번인 아이가
교실 뒤편에 있는 아궁이 큰 솥에 쌀을 넣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조그만 텃밭에서
오이랑 고추랑 토마토를 따와서는
보리 비워낸 빈 들녘을 풍경삼아
푸진 한 점심상을 차려낸답니다

이렇게 눈만 떠면
마주하는 이행복이 지난 길을 따라
첫 번째 맞이하는 스승의 날이 되었습니다
교실문을 열고 수업을 하러 들어선 저의 눈에
교탁에 올려져 있는 선물 꾸러미들
무르익은 가을을 챙겨주신 듯
쪼망쪼망하게 놓인
무 2개
당근 3개
수박 한 덩어리
참외 다섯 개
부모님들이 농사 지어 보내준 것들입니다

“쌤요
오늘은 선생님의 날이니까
말썽 안 피고 우리 전부 말 잘 들을게 예“라며

반장이 일어서더니
뭔가를 준비한 듯 큰소리로 외칩니다

“이 “라는
반장의 구호에 맞춰 아이들은 일제히 소리칩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우리 선생님“

“미”
“미치도록 사랑합니다..”

“영”
“영원히 저희랑 함께 하실꺼지예..”

아이들은 제 이름으로
사랑의 삼행시를
짓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저 좀 행복해도 되죠....”

제가 휴일이나 방학 때
서울 부모님 댁에 다녀 올라치면
아이들은 혹시 안 올까 봐...
늘 걱정을 매달고 다닙니다

“쌤요
오메 아버지 얼굴만 퍼떡 보고
후딱 내려오이소.."

"그래 부모님 뵙고 꼭 두밤만 자고 올게.. “

그렇게 밤새 초승달에 걸린
아이들 얼굴과 시름하다 새벽녘에
집을 나서려니 신발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놈들이..
제가 못 가게 어디 숨겨놓은 것 같아
헝클어진 매듭을 풀 듯 찾아보니
장독 안에 넣어뒀네요...
이런 순수한 아이들을 어찌 두고 갈 수 있겠어요

오늘은 가을 운동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가을 운동회가 열리면
학생보다 학부형이 더 많이 온답니다
어젯밤을 꼴딱 새 가며 아이들이랑
운동장에 만국기도 달고
주전자에 백묵가루로 달리기 선도 그었습니다
달을 보며 비가 안 오게 해달라고 빈 덕분인지
화창한 가을날이 벌써 와
운동장에 살포시 먼저와 앉아 있네요

경운기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실고 온 막걸리를 내려놓은 한편에
집집마다 먹거리들을 풀어헤쳐놓어니
부모님들의 축제가 따로 없는듯합니다
소박하고 정이 넘치는 여기게 온걸
감사해하며
가을 햇살에 널어놓은 시간들로
채워가고 있었습니다

봄이 오면
붉은 물감으로
연분홍 진달래 꽃이 온산을 물들여 놓으면
언덕에선 민들레 홀씨 되어 흩날리고

여름이면
개울천에서 아이들의 멱감는 소리와
솥 안에는 옥수수 삶아먹는 행복이 피워 나고

가을이면
빨갛고 노란 색종이 같은
나뭇잎들 밞으며
아이들의 웃음으로 가을을 노래하고

겨울이면
비료포대로 언덕에서
눈썰매를 타는 낭만이 있는 곳

아이들은
하늘 미소로 맞잡은 기쁨만으로도
해맑게 웃음 지을 줄 알기에
공부는 조금 못해도
숙제도 가끔 안 해와도
어디에서 무얼 하든
행복할 거란 믿음이 생겨 나기에
누굴 위해 꽃을 피울 수 있다면
바로 여기라 말하고 싶습니다

발맞쳐 누군가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행복도 여기에 있답니다
여름 방학 때가 되면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책 버스가 오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그날은 집에서
고구마와 감자나 삶은 옥수수를 가져와
배를 채우며
교실과 복도 운동장 여기저기 흩어져
책을 읽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이쁘기도 하답니다

떠나는 책 버스에게 손을 흔들며
아쉬움까지 실어 보낸 아이들은
바람 빠진
달구지가 허기진 노인을 끌고 가듯
하나둘 지는 석양에 떠밀려
집으로 걸어가는 모습은
예쁜 화폭에 담아두고 싶을 정도니까요

밤이면
산그늘에 붙잡힌 노을을 보며
산골음악회가 열린답니다
가을이라 배부른 달님이 벌써 나와
조명을 밝히면
반딧불이의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
풀벌레들의 합주가 이루어집니다
굵은 안경테 넘어 선생님의
지휘봉이 밤하늘을 가로 저어면
아이들의 “고향의 봄”이
저 밤하늘에 울려펴집니다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아기별들의 박수를 받으면서요

낮에는
산과 들로 옮겨 다니며
고추잠자리와
지붕 위에 걸린 달을 닮은 늙은 호박들을
화폭에 담느라 바쁘답니다

“너희들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다들 똑같은 목 고리로 말을 합니다
“선생님“

“ 어떤 선생님이 되고 싶어 “

아이들은 동시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합창을 합니다

“떠나지 않는 선생님요...”

아이들은
정들만하면 늘 떠난 선생님의 뒷모습만
바라보는 게 얼마나 마음 아파섰어면
다들
떠나지 않는 선생님이라고 대답할까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그렇게
아무도 막지 못한 저 새벽처럼
우리들의 하얀 이야기가 쌓여가고 있을 때
날아든 편지 한 통
그 안에는 폐교를 하기에
10월까지만 근무하라는 공문이었습니다
이제 사랑스러운 이 아이들과
이별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얀색의 스펀지를 닮은
22개의 눈동자와 마주하는 마지막 수업
벌써 아이들의 얼굴에는
눈물자국이 골이 패여 있었습니다
“ 쌤요
인제 이학교 못 와예 “

“쌤요
서울 가도 저흴 잊으시면 안됩니다 “

“방학 때 꼭 놀러 오실꺼지예”

“쌤요....
보고 싶을끼라예 “

마지막 수업을 끝내고
가을바람과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든
파란 잔 뒤에 누워
하늘을 풍경삼아
11명의 아이들과 저 하늘 속에
우리들만의 졸업사진을
새겨넣으며 저는 기도 했습니다

“ 언제 어디서든
사랑만큼 아름다운 길이 없기에
오직 그 길을 택하게 해달라는...... “

펴냄/노자규의 골목이야기18-08-22-14-04-51-224_deco.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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