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스코이-51개구라
"엄밀히 말하자면 실제로는 유상증자 따윈 없어.다 구라지."
하청이 도저히 감을 못 잡겠다는 듯 되물었다.
"대체 뭔 소릴하는거야. 지금 장난해?"
성윤이 과장을 바라보며 바로 답을 제시했다.
"김 과장 니가 주식시장에 감자루머를 퍼트려. 잘아는 애널리스트 몇놈한테
용돈 좀 쥐어주면서 동화건설에 대한 악성 루머를 퍼트리란말야."
이젠 대놓고 반말하는게 기분더러웠지만 과장은 성윤의 치밀한 계획에 경탄
을 금치 못했다. 하청이 평소 최성윤이란 인물을 왜 높이 평가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얼마까지 떨어질거로 예상하시는데요."
"예상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야해.현재가가 2천원 초반대니까 무조건 800
원대 까지는 떨궈야해."
과장은 기겁을 했다. 제아무리 악성루머를 퍼트린다고 해도 멀쩡한 주식을
반토막 이하로 만든다는게 만만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요즘은
개미들도 주식공부를 많이해서 가치투자네 장기투자네 옛날 같지않게 아주
똑똑하기 때문에 이런 터무니없는 가격대로 떨군다는게 말처럼 그리 쉬운일
이 아니었다. 까라면 까시꺄.
"그럼 반토막도 더 나는건데요. 요즘은 개미들도 쥐새끼처럼 약아져서 좀 어
렵겠는데요."
제아무리 서울대 출신에 해외파 경제학석사 출신에 온갖 화려한 스팩을 가지
고 있어도 주식판에서 큰돈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만큼 이론과 실전은 다
르다는 말인데 앗싸리 주식판에서 여태 뒹굴러온 성윤으로서는 이런 과장이
답답하기 이를데 없었다.
"야야 쉽게 생각해. 쥐새끼들한테는 쥐약을 먹이면 되는거야 알겠냐?"
말은 바른말인데 너무 은유적이라 과장과 하청은 눈만 껌뻑거렸다.성윤은 담
배를 물며 설명을 했다.
"곧 상반기 감사보고서 올리잖냐 그치?"
"회계법인에 의뢰해놨으니 다음주까진 금감원에 서면보고 해야할겁니다."
"그 감사보고서를 내지말고 계속 미루란 말야 알겠냐?"
주식회사는 짧게는 분기마다 길게는 1년 단위로 회계법인을 통해 감사보고
서를 제출하는데 거기엔 회사의 재정상태나 인사이동에 관한 내용등이 포함
되어있다.이 감사보고서를 금감원에 제때 제출하지 않으면 감사결과에 대한
공시를 주식시장 즉 증권거래위원회에 내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불공정공시
에 해당되어 벌금을 내거나 영업정지 등 중징계를 먹게 된다. 정보가 부족한
개미들 입장에서는 자신이 투자한 회사가 만약 불공정공시법인으로 지정 될
경우 매우 불안해 하게된다. 왜냐면 회사에서 뭔가 구린게 있어서 감사를 못
받는거아니냐,대표이사나 임원 누군가가 회사돈 왕창 떼쳐먹고 튄거 아니냐,
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기때문이다.실제로 어떤회사는 대표이사가 회사자금
을 횡령한 것을 감추기 위해 분기 감사보고서를 제출하지않았고 그로인해 불
공정 공시법인으로 지정된 후 특별감사결과 상장폐지 된 경우도 있었다.하청
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불공정 공시면 개미들 겁나게 쫄겠는데?"
"거기다가 감자루머를 살충제처럼 살살 뿌려대면 제아무리 강성주주라도 안
던지고는 못 배길껄?"
이번엔 김 과장이 나섰다.
"좋은방법이긴 한데요 그래도 동화건설이 한딱까리 하는 건설사가 아닙니까.
알토란같은 자산과 임 하청 전무님의 수주능력보고 장기투자하는 투자자들
이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과장이 회사를 칭찬하고 나서자 하청이 순간 우쭐해 했다.1차원적이긴.
"뭐 그렇긴해.내가 있는한 주가를 반토막 내는게 사실 좀 불가능하다고 봐야
지.큼큼.."
지랄들하고 자빠졌네. 답답한 소리만 해대는 인간들 사이에서 성윤은 아주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강성주주가 아니라 강철로 만든 주주가 와도 제 눈앞
에서 주가가 줄줄줄 떨어지면 안 팔고는 못배기는 게 주식판의 생리인 것이
다. 소액주주들의 심리를 꽤뚫고 있는 성윤이었다. 니가 심리학자냐.
"나만 믿어. 내가 다 알아서 해. 장롱속에서 10년째 썩고 있는 장롱주식까지
이번에 다 토해내게 해서 물갈이 할테니까 두고 보라고.
마음이 급한 하청이 나섰다.
"그래 감자루머로 800원까지 떨군다고 쳐. 그담엔 뭐 어쩔건데?"
"우린 여러개의 모찌계좌를 통해 800원대 주식을 밑에서 소리소문없이 야
금야금 받아먹는거야.그러니까 김 과장 니가 믿을 만한 애기들 모아서 팀을
하나 만들란 말이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옳지 그래. 이렇게 물량 확보되면 1200원대 까지 말아올린단 말이지. 그리
고 곧 이어서 감자는 없고 대신 900원에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실행한다고
공시를 해."
좌,우의 골이 간신히 제자리를 찾은 하청은 이해하기 어려운 성윤의 말때문
에 지진에 갈라지는 돌처럼 다시 해골에 금이 갔다. 돌대가리냐 금이 가게.
"유증가를 어떻게 맞추려고?"
유증시 신주의 발행가액 산정근거는 과거 1개월간의 가중산술평균주가,1주
일간의 가중산술평균주가 및 최근일 가중산술 평균주가를 산술평균한 가격
과 최근일 가중산술평균주가 중 낮은 가격을 기준주가로 하여 할인율 %를
적용하여 산정한다. 따라서 유증가를 900에 맞추려면 할인율 10%적용 시
주가를 최소1000원까지 끌어 내려야한다.
"가지고 있는 물량 전부 쏟아부어야지."
"아아 이제 알겠다.그러니까 유증가와 현재가 차이가 100원정도 나니까 다
들 유상증자 청약에 대성공하리라 예상하겠군. 그러면 대형악재였던 감자는
지나가고 호재만남겼네.돈이 급한 회사에 유증성공도 하나의 호재니까 단타
개미들이 개떼처럼 우르르 몰려들겠군."
성윤은 하청의 예측에 맛깔나게 미원을 뿌렸다. MSG 몸에 해로와.
"유증 공시 직전에 그냥 1600원까지만 쳐올려.제아무리 유상증자 호재라도
그 이상은 무리야. 차익실현 때문에 자칫 매물 폭탄을 맞을 수 있거든."
과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유증 공시와 동시에 주가를 올리는게 아니구요?"
"아냐 1600원까지 올렸다가 유상증자 공시가 나오면 매수세가 몰릴테고 주
가는 2000원 근처까지 갈거야.바로 그때 우리는 가진 주식을 몽땅 내다판다.
이렇게 물량 싹 정리하고나면 이번엔 유상증자 취소 공시를 내."
그러니까 감자는 말그대로 루머일 뿐이었다.악성루머를 이용해 주식을 싸게
사고 유상증자라는 호재를이용해서 비싸게 주식을 파려는 성윤의 의도를 알
아차린 하청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렇게 좋냐.
"100억 넣고 200억 먹기. 음 괜찮군."
하청이 성윤과 과장을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다들알고 잘 있겠지만 이번일 제대로 하려면 채권단도 속이고 시장도 제대
로 속여야해. 따라서 철통보안이 생명이지."
하청은 생각만해도 좋아서 입이 찢어질 지경인데 왠일인지 김과장의 표정엔
무거운 근심이 먼지처럼 떠다녔다.
"허위 감자에 유증취소까지.. 금감원 애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하청이 손을 내저으며 과장의 말을 가로 막았다. 금감원 따위야 일도 제대로
못하는 호구들이고 제대로 조사나 할지 그능력이 의심되는 집단이니 별신경
쓸거 없었고 시나리오가 앞, 뒤가 착착 맞아떨어지는게 이건 뭐 돈을 삽으로
퍼 담을일만 남은거 같았다. 그는 뭔가 아주 잘될거 같다는 부푼기대를 가지
고 성윤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야,불공정공시.그까짓거 벌금 몇 푼이면 되.그리고 감자는 말그대로 루머일
뿐이야.법적 책임이 전혀 없다고. 암튼 돈이 씨가 마른회사에 유증을 통한 신
규자금 유입이라면 굉장한 호재야."
성윤의 신념은 바위처럼 확고부동 했다.
"시장이 제아무리 죽네사네 어렵다해도 이 정도 재료로 2배 정도 띄우는 건
껌이지."
성윤의 말만 듣고 있어도 배가 부른 하청이 깔끔하게 뒷설겆이를 했다.
"우리가 2000원 이상에서 다팔고 나오면 주가는900원 제자리 찾아가겠
네? 여기저기 개미무덤 여럿생기겠군. 곡소리 좀 나겠어 크헐."
성윤이 예리한 눈빛으로 과장을 쳐다보았다.
"요즘 대수로 공사중인 리비아쪽에선 부족간 갈등이 꽤나 심하다면서?"
"예,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습니다."
"좋아, 여기까지 one go, two go를 향해서 주식을 재매집 할거야."
하청의 입이 떡 벌어졌다. 파리들어가 입다물어.
"작전을 또해?"
성윤이 떡하니 벌어진 하청의 입에 떡을 던지듯 말했다.말장난은.
"리비아분쟁 조짐이 있다는 루머를 주기적으로 퍼트리라고. 그리고 이번엔
현재 동화건설 회장인 임 하순도 같이 엮을거야."
이복형제인 임하순 얘기가 나오자 하청의 눈이 번뜩였다.
"그인간을 어떻게할라고?"
"임 하순 그 물건 요즘 해외 카지노 드나든다며?"
대체 저새끼는 저런 정보를 다 어디서 알아내는건지 도무지 알수 없는 하청
이었다.자신의 채권,채무관계는 물론 은밀하게이뤄지고 있는 이복형의 해외
원정도박 사실까지 낱낱히 알고 있는 걸 보면 정말 무서운 놈이란걸 새삼 깨
닭았다.같은 편이니 망정이지 만약 원수지간이었다면 언제 성윤이 녀석한테
작살날지 모를 일이었다. 저놈이 워낙 착해서 그렇지 맘만 먹으면 나라 전체
를 말아먹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아무튼 성윤이 어
떻게 하느냐에 따라 임 하청은 큰돈을 벌수가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임 하순
을 회장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후 그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하청
은 적극적으로 나섰다.
"내가 알기로는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마카오와 홍콩을 오가는것 같더라고.
회사돈을 빼돌리는 것 같은데 그동안은 대외비에 특활비에 온갖 명분을 붙
여서 빼쓰다가 점점 대담해져서 이젠 허위로 물품구매를 잡아놓구선 매출채
권을 만들어서 빼쓰더라. 시발놈 신났어 아주."
"음 잘됐어.리비아 분쟁 루머와 함께 임하순 회장의 해외 원정도박 스캔들을
내면 동화건설의 주가는 천원 이하로 쏟아져 내릴 거야. 그러면 우리는 전에
벌었던 200억으로 가격오르지 않게 개미들 모르게 조용히 평균단가 천원 이
하로 야금야금 긁어모으는 거지."
개미 들어가면 어쩌려고 과장의 입도 떡하니 벌어졌다.
"개미핥기군요."
성윤은 개미핥기의 진수를 보여줬다.
"3개월이상 주가를 지루하게 횡보시켜면서 매집한다 알겠니?대주주였던 임
하순은 부실경영책임으로 지분이 거의 없을 테고 나머지 은행하고 채권단이
쥐고있는 지분이 몇프로였지?"
성윤이 하는 말을 열심히 메모하고 있던 과장이 프로답게 말했다.
"52프로입니다."
"좋아 그럼 총주식수가 5천만주 정도 되니까 은행에서 약 2500만주 가지고
있는거네.그럼 우리는 평균단가 천원이하로 나머지 주식의 40%이상 즉2천
만주 이상 매집이 끝나면 5천원까지 그냥 쳐올려."
하청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성윤에게 물었다.
"평단이 1천원 인데 5천원이면 대체 몇배냐? 와 5배네 5배. 아주 개미들 제
대로 잡아먹는구만. 왜근데 하필 5천원이냐?"
"채권단 애들, 즉 은행에서 전에 동화건설 상대로 금융지원할때 발행한 주권
이 액면가 5천원이거든.따라서 본전이 5천원이야.그 이상은 위험해.더 오르
면 놈들도 차익실현 하려들테니까."
"음 그렇군.그런데 무슨수로 2000만주나 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주식을 팔아
먹냐?그거 우리가 팔려고 했다가는 바로 하한가로 직행할텐데. 아마 반의 반
도 못팔고 주가는 반토막 날걸."
"우리는 5천원을 꼭지로 보고 보물선찌라시를 터트리는 거야.돈스코이 뉴스
터지면 매매호가창에 상한가잔량 엄청 쌓일테고 그러면 거기다대고 그냥 패
대기 쳐버리는거지."
하청은 이 껀은 무조건 된다고 보았다. 첨엔 좀 긴가민가 했는데 이젠 성공을
확신 할 수 있었다. 믿을만한 애널리스트 2, 3명과 맘대로 부려 먹을 수 있는
신문기자 나부랭이들만 섭외 해놓으면 완벽한 작전이었다.
"쿠하하 5배 아니 총 10배로군. 요런요 날강도 같은 놈아. 굉장하다 아주 스
릴 넘쳐 쿠하하."
이미 찢어졌는데 또 찢어진 하청의 입은 아예 걸레가 되어버렸다.
넥타이를 풀어제끼며 경악하는 과장의 입도 온전치는 못했다. 침을 질질 흘
리는 그의 입은 걸레를 넘어 실례를 범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난생 처음듣는
주식작전의 마스터 플랜과 압도적 솔루션을 듣고나자 마치 억만장자가 된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존나게 많이 배운 김과장도 돈 앞에서는 사이다에 빠진
새우꽝처럼 흐물흐물 흘러내렸다.쌌냐.
"쿠헤헤 총 수익률이 무려 1000%.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군요.쿠헤헤"
침을 질질 싸대는 하청을 보고 성윤이 무슨 신호처럼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하청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김 과장에게 말했다.
"너 잠깐 나가있어."
한창 재미있던 차에 과장은 무진장 아쉬웠다.
"아직 술도 안 마셨는데."
"그렇게 걸레가 된 입으로 어떻게 술을 마셔.좀 이따 실컷 먹여 줄 테니까 잠
깐 나가서 입좀 닦고 담배한대 빨고 있어봐."
"저 담배 끊었는데요."
과장이 울상을 짓자 옆에서 괜히 무안해진 성윤이 휴지를 꺼내며 과장을 달
래 주었다.
"그럼 휴지 줄 테니까 딸딸이나 한판 치고와."
과장이 인상을 팍쓰며 물한잔 시원하게 들이킨후 입맛을 접쩝다시며 룸밖으
로 나갔다. 찌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