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스코이- 27김양의 국물
돈스코이-27김양의 국물
성윤과의 결혼을 결사반대하는 아빠와 대판싸우고 나온 진주는 마음이 울적
했다. 아빠가 하는 말씀이 모두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성윤오빠는 구제 불
능의 생양아치였다. 주머니에 돈만 생기면 도박판을 기웃거렸고 시간이나면
집에서 잠만잤다.둘이 있어도 요즘엔 예전처럼 헐떡거리며 달려들지 않는다.
남녀사이가 오래되면 친남매처럼 되어서 손잡는 것조차 어색해 진다는데 말
이 뻥이 아닌것 같았다.그래도 진주는 성윤과 다시 잘해볼 생각이었다. 권태
기가 찾아오긴 했지만 자신이 열심히 노력해서 성윤의 마음을 되돌리고 싶었
다. 예전에 위험에 빠진 자신을 구해주었던 것처럼 진주도 늪에 빠진 성윤을
구해주고 싶었다.받은 만큼 되돌려 준다는 상식적인 의미보다는 진심으로 사
랑하는 상대에게 무한히 베풀어주고 싶은게 그녀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진주
가 삶의 가치를 이렇듯 명확하게 세울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 자신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서해다방
당삼채란 말에 찢어질 듯 벌어진 경천의 입을 향해 성윤은 쉬지않고 계속해
서 설탕을 뿌려댔다.
"당삼채는 중국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낭만적인 도자기들이라 그 값어치가
엄청 나지."
"뉴스에 비온다는 말은 아직 없지?"
자꾸 딴청을 피우는 영석이 너무 얄미웠다. 성윤은 지도를 신경질적으로 덮
으며 말했다.
"이게 우리물건은 아닌가보네."
"왜 또 잘나가다가."
"잘나가긴 여태 나혼자 잘나갔지.다 관둬 시발 내가 뭐빨았다고 싫다는놈 데
려다가 갑부 만들어줄일 있냐. 시발 다 때리치워 때려치자고."
단1초라도 더 김양이 있는 다방에 머물고 싶은 영석이었다. 혼자있으면 쪽팔
리니까 말할 상대가 필요한데 성윤이 나가버리면 혼자 쌩뚱맞게 앉아있기도
그렇고 해서 180도로 완전 삐쳐버린 성윤을 달래보려고 영석은 궁금하지도
않은 질문을 했다.
"거 성질머리하고는. 밥은 먹었냐?"
"내 성질이 뭐어때서? 말해봐."
김양만 아니면 한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좋아하는 여자가 있기 때문에 최대한
신사답게 행동하려 애쓰고 있는 영석이었다.
"그래 이놈아 내가 잘못했다. 됐냐, 됐어?"
"되긴 뭐가되."
영석의 모든 신경세포(특히 말초신경)는 김양의 엉덩이에 쏠려 있으면서도
용캐 이야기를 꺼냈다.
"근데 그게 확실한 정보가 있는거냐?"
노동이 부족해서 오는 피로만큼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도 드물다.그렇지
않아도 제대로된 껀수 하나 못 찾아서 여자 엉덩이만 쳐다보고 있던 영석에
겐 솔깃한 얘기이긴 했다.
"너 우리 동창중에 유일하게 교수된 애있지."
공부도 지랄나게 못하는 놈이 부모 잘 만나서 교수가 된 춘섭을 말하는 거였
다.놈은 지방대를 나와서 서울에 있는 대학교의 대학원에 운좋게 들어갔다.
보나마나 돈으로 쳐말랐을텐데 그놈은 그렇게 대학원을 마치고 박사과정도
마쳐 지방대 교수가 되었다. 요즘 교수되는게 하늘에 별따기라 이게 원래는
택도 없는일인데 서울대법대를 나와서 지방판사를 하며 유지행세를 하던 아
버지가 돈들이고 빽들여서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아 춘섭이..동양대 역사학과 교수? 잘 사나몰러."
성윤은 신이 나서 춘섭과 있었던 얘길 꺼내들었다.
"걔랑 내가 일주일전에 만났잖냐."
"만나서 뭐했는데?"
"너같음 뭐 했겠냐? 남자끼리 만나서 설마 고추 만졌겠냐?"
"그치? 날도 더운데.땀때문에 고추만지기 엄청 싫었을거야 그치?"
정신이 딴데 가있으니 올바른 말이 나올리 만무한 영석이었다. 등지고 있던
김양이 뒤를 돌아보자 그는 얼른 눈을 피해 바보처럼 피식웃으며 성윤을 바
라보았다.
"이새낀 가끔 이렇게 듣보잡, 꼴통소릴한다니까.그게 아니고 춘섭이 걔가 파
주에 있는 고사찰엘 갔대. 거기서 역사적으로 존나리 의미가 있는 탱화인가
뭐시기인가를 탁본을 뜨다가 향로단지 아래에서 아주 이상한걸 발견했다지
뭐냐."
"얼마나 이상하길래?"
"그게 처음엔 무슨 암호인줄 알았는데 잘세히살펴보니 서해지도였더라 이말
씀이야.거기에 깨알같은 메모가 있었는데 그메모 안에 당나라에서 백제로 당
삼채를 가득 싣고 가다가 사라져버린 배의 행방이 고스란히 적혀있더라 이말
씀이야 내말은.이정도면 만족하겠냐?"
"야 그럼100%확실한거네."
영석이 약간반응을 보이자 성윤이 너스레를 떨며 뒤로 약간 빠져앉았다.더이
상 몰아붙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단 생각에서 성윤은 화제를 약간 돌
리기로 했다.
"김 양아, 너 이따가 이씨 만나기로 했다며?"
주방에서 컵을 씻던 그녀가 몸을 획돌렸다.대단한비밀을 들킨것처럼 눈을 흘
기며 성윤을 쳐다보았다. 그바람에 그녀의C컵가슴도 함께 그 장엄한 모습을
드러냈다.영석의 눈알이 소눈깔 만하게 커졌다. 성윤은 바로 이때를 노렸다.
영석의 마음을 마구 충동질해 일에 끌어들이려는 속셈이었다.김양을 향해 성
윤은 큰 소리로 말했다.
"아서라. 그 할아비 빌딩 하나가 다란다.그나마도 불황으로 임차인들이 줄줄
이 망해나가는 바람에 이젠 세도 얼마 안나온다더라.요즘같은 세상엔 현찰이
최고지. 안 그래?"
김양이 딱소리나게 맞장구를 쳤다.
"현금 많이 싸들고 오는 놈이 먼저 먹는거지 뭐."
닳고 닳은 김양이었다.그녀는 일부러 영석이 보란듯 엉덩이를 크게 흔들거리
며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영석의 눈엔 설거지를 손으로 하고 있는건지 엉덩
이로 하고 있는건지 만져봐야 알 정도였다. 구라는.
영석은 "먼저 먹는다."에 또 꽂혀버렸다. 그의 부채질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
는 이유였다.
(먼저 먹는다..먼저 먹을 수 있다..먼저 잡아 먹어야 한다..)
성윤은 벌겋게 달아오른 영석의 마음에 휘발유를 들이부었다.
"냄비가 펄펄끓어 그냥..국물이 뚝뚝 흘러 그냥..먼저 숟가락 디미는 놈이 임
자네..완전 자율배식이잖아 이거..누구는 급하게 됐네.."
서해에서 건져 올린 유물은 익산에 있는 노씨에게 가져가면 바로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그걸 알고 있는 영석에게 도자기가 바로 코앞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명확하게 인식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손만 쭉뻗으면 먹을 수 있는
떡이란 걸 알게끔 해야 했다. 아울러 영석을 망설이게 하는 윤리적 울타리도
허물어버려야 했다.
"우리가 뭐 남의꺼 훔쳐가는 것도 아니고 이젠 오래되어서 주인도 없는 물건
건지겠다는데 누가 뭐랄 사람도 없고. 이건 빈집 털기나 마찬가지잖냐."
"......"
성윤은 무너지기 일보직전인 영석에게 마지막 회심의 일격을 가했다.
"내가 딴건 몰라도 당삼채는 손에 넣는 즉시 바로 현금으로 바꿀 수 있어. 알
지? 워낙 보기드문 귀한 물건이라서 너도나도 달라고 아우성칠껄.벌써 달라
는데도 몇군데 있고.부르는게 값이야 인마.저기 김양봐바. 니가 현금만 손에
들고 있으면 콘돔도 없이 바로 모텔로 데려 갈 수 있다고. 막말로 늙은이 이
씨한테 저 어린 김양이 잡아 먹히게 놔둘거야? 니가 그러고도 인간이야? "
인간의 도리를 져버리고 싶지 않은 영석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러다 잡히면?"
성윤이 손사래를 쳤다.
"누가 너랑 간데? 참나.."
"좋은 생각 있음 말해봐!"
"아 글쎄, 너랑 같이 안 간다니까!"
"왜 이래정말, 친구끼리."
이때를 노려야했다. 성윤이 바투 앉으며 다익은 고기에 양념을 쳤다.
"니가 일단 어업인 등록이 되어있잖니."
"당연하지.어부인데."
"그러니까 머구리, 조개잡이 배로 위장하면 감쪽같아. never, 절대 눈치 못
챈다니까."
아버지의 무덤과도 같은 바다. 영석은 그 바다를 더 이상 더럽히기 싫었다. 6
년전 양진주라는 고딩때문에 바다에 던져버린 백자들도 자꾸 생각났다.성윤
이 그일에 대해 사과 조차 하지 않아 영석은 아직까지도 맘이 상해있었다. 맞
다. 소심한 a형이었다.영석은 딱 잘라 말했다.
"아무래도 난 안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