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냄새 (Scent of rain)
안녕하세요.
@Chromium 입니다.
장마가 시작됐네요.
날은 더워서 모두가 눅진해지고 지쳐갈때 쯤
퇴근길에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우리를 감성에 젖게 하고,
왠지 모를 시원함과 상쾌함도 가져다 줍니다.
물 관련 과학 이야기를 쓰겠다고 거창하게 얘기 해놓고,
과연 첫 얘기는 무엇으로 해야할까 고민하다가
마침 장마철이기도 하니 비와 관련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비와 관련한 추억이 다들 있으실 겁니다.
비 내리는 날의 감성은 아름다운 장면으로 연출되어 남겨지기도 합니다.
영화 <클래식> 중에서
저는 비 내리는 날에 혼자 우산쓰고
비 냄새를 맡으며 천천히 걸어가는걸 좋아합니다.
싱그러운 풀 냄새 같기도 하고, 아스팔트의 기름 냄새 같기도 하지만
묘한 중독성이 있는 이런 냄새가 좋습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제가 좋아하는 비 냄새는 글 서두에 얘기했던 것처럼
비 내리는 날 상쾌한 느낌을 가져다 주는 역할을 하는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비 냄새의 성분은 뭘까?
왜 비가 내릴 때만 느낄 수 있는 걸까?
찾아보니 저만 궁금한게 아닌 모양이었던지
꽤나 낭만적인 연구자들이 비 냄새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놓았었습니다.
1964년 호주의 두 연구자에 의해 Nature 지에 관련 논문이 게재되었습니다. 1, 2)
우리가 평상 시에 느끼지 못하는 냄새 물질 들이
공기 중의 물 분자로 스며들게 되고,
습도가 높아져 예민해진 후각세포에서
이러한 냄새 물질들을 느낄 수가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 냄새 물질들은 지오스민 (geosmin)과
암석과 토양에 스며들어있는 식물들의 유분이라고 합니다.
이 두 연구자들은 비 냄새를 Petrichor라는 이름으로 명명했습니다.
그리스어로 Petri(암석)+ ichor(신의 피)의 합성어라고 합니다.
식물들이 발아할 때 내는 유분들을 '신의 피'라는 멋진 말로 비유했네요.
그러면 앞서 말한 냄새 물질 지오스민 (geosmin)은 어떤 물질일까요?
지오스민의 화학적 구조
지오스민은 흙 속의 방선균류들이 내는 물질인데,
그리스어로 Geos (Earth) + min (odor) '땅의 냄새'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여름 강가에서 나는 흙 냄새가 바로 지오스민의 냄새입니다.
신기한 점은 지오스민은 수중에 5 ppt 수준 (물 1리터 중 5 나노그램; 5*10^-9 g/L )만
존재해도 사람의 후각으로 느낄 수가 있습니다. 3)
비 오는 날에 극소량 존재하면 상쾌한 느낌을 주지만
식수에 존재하면 이취미 유발 물질 (맛냄새 물질)로 작용하여
물 맛을 떨어뜨리고 미각에 불쾌감을 유발하지요.
따라서 정수장에서는 지오스민의 검출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각 가정에 수도로 보낼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극도로 낮은 농도의 지오스민을 분석 처리하는데는 꽤나 어려움이 따릅니다.
분석할 때도 수 회의 농축 과정을 거쳐야하고,
농축 후의 지오스민은 눈 점막에 자극을 주기도 합니다.
덕분에 정수처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극도로 낮은 농도의
지오스민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를 많이 진행중이지요. (살려줘)
그렇다면 지오스민과 식물의 유분들은 어떻게 공기 중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대답은 비교적 최근(2015년)에 MIT의 실험 결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4)
빗방울이 지표면에 부딪힐때 작은 물방울(aerosol)로 쪼개지게 되는데,
이 때 냄새 물질들이 이 에어로졸로 이동하게 된다는 것 입니다.
에어로졸은 충분히 가벼워서 공기 중에 잘 분산이 되고,
그렇기 때문에 냄새 물질들이 후각세포로 잘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를 증명하기 위해 MIT에서는 초고속 카메라를 이용하여
물방울이 쪼개져 에어로졸로 분산되는 영상을 촬영하였습니다.
총 600번 이상의 실험을 하였고, 28 종의 지면과 암석에 부딪혀
각기 다르게 분산되는 에어로졸을 관찰 하였습니다.
에어로졸로 분산되는 빗방울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한 에어로졸 분산 장면
자칫 연구자라고 하면 딱딱하고 재미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우리 주변에 벌어지는 현상들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을 위하여,
이러한 낭만적인 연구를 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눈 앞의 과제에 급급한 연구 진행을 하는 연구자보다
주변을 현상에도 관심을 갖는 물 연구자가 되고자 합니다.
(네이쳐에 논문을 쓰기 위하여)
감사합니다.
참고문헌
1. I. J. Bear and R. G. Thomas, Nature of Argillaceous Odour, Nature (1964)
2. I. J. Bear and R. G. Thomas, Petrichor and plant growth, Nature (1965)
3. E.H. Polak and J. Provasi, Odor sensitivity to geosmin enantiomers, Chemical Senses (1992)
4. Y. S. Joung and C. R. Buie, Aerosol generation by raindrop impact on soil, Nature comm. (2015)
네이처에 논문을 쓰기 위해서에서 웃고 갑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