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와 화폐의 회계적 기원 - 2
화폐의 회계적 기원과 국가주의
화폐를 둘러싼 대표적인 경제학 논쟁 중 하나는 ‘부분지급준비금 은행’을 허용할 것인가를 두고 통화학파(Currency School)와 은행학파(Banking School) 간에 있었던 논쟁이다. 너무 단순화하는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통화학파는 은행들이 부분지급준비금만을 남기고 대출을 남발할 경우 시장에는 신용화폐가 과다하게 공급되므로 화폐의 가치가 불안정해지므로 그것을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었고, 은행학파는 일상적 시기에 은행은 예금의 일부만 보유하고 있더라도 안정적 운영에 문제가 없으며 대출을 통해 시중에 통화를 공급함으로써 통화팽창에 의한 경기부양 효과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고전주의 경제학에 근거한 통화학파는 화폐를 시장의 부수적 현상으로 보았지만, 중상주의에 기초한 은행학파는 화폐를 시장을 움직이는 촉매로 본 것이다. 이 둘의 논쟁은 어떤 통화 시스템이 공황을 더 잘 대응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응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양자 모두 공황에 대응하는 것에 실패하였음에도 은행학파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부분지급준비금은행의 구상은 은행학파의 ‘자유은행’ 이론으로부터 나왔지만, 상업은행들이 모여서 발권 주체인 연방준비은행을 구성한 미국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가는 통화학파가 지지했던 중앙은행이 최종대부은행으로서 이를 운영하고 있다. 국가가 직접 통제하는 중앙은행을 지지하던 ‘통화학파’는 부분지급준비금은행을 반대했지만, 현실에서는 자유은행에서 중앙은행에 이르는 모든 형태의 최종대부은행을 은행학파가 장악함으로써 ‘통제 가능한 자유은행’이라는 새로운 시스템과 이데올로기를 완성시켰다.
부분지급준비금은행에 100원을 이자율 10%로 예금한 예금자를 가정하자. 그는 1년 후에 110원을 받겠지만, 은행은 지급준비율 20%로 대출을 할 경우 승수효과를 통해 시중에 400원의 신용 화폐를 공급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모든 통화가 일시에 예금으로 들어온 것을 가정하면 총 통화량이 4배로 증가하였으므로 100원짜리 빵의 가격은 400원으로 올라갈 것이다. 이제 110원을 은행으로부터 받은 예금자는 자신이 예금하던 시점에 100원에 살 수 있었던 빵을 4분의 1 정도 밖에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화폐의 국가주의는 발권이 아니라 부분지급준비금은행의 장부 상에서 실현되며, 그런 이유에서 현대적 화폐의 90% 이상이 ‘회계적 원천’으로부터 공급된다.(한국의 지급준비율은 7%이며, 이를 기준으로 보면 총통화에서 신용화폐가 차지하는 비중은 93%가 된다.)
물론 현실은 이렇게 극단적이지 않다. 모든 본원통화가 다 예금으로 은행에 예치되는 것은 아니고, 이자율에 대한 사회적 통제도 작동한다. 다만 ‘회계적 화폐’의 비중이 높은 현대적 화폐 시스템에서는 명목 상의 예금 금리가 높더라도 통화 정책의 결정자가 재할인율이나 지급준비율을 조정하여 예금자의 이익을 갈취할 위험이 있음이 원리적으로 명백하다. 또한 지급준비율에 직접 손을 대지 않더라도 DTI 규제와 같은 대출 규제를 통해 지급준비율 조정과 유사한 총통화량 조작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장부에 적힌 금액에 손을 대지 않으면서 장부의 실제 효과를 조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극단적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가 통제하는 장치를 갖도록 하면 위험이 해소되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회계 장부를 통해 화폐를 공급하는 결정권을 가진자들의 정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케인즈에 의한 중상주의의 부활
앞서 이야기한 바대로 애덤 스미스가 화폐의 시장적 기원을 이야기한 맥락은 당시 국가주의를 앞세운 중상주의 이데올로그들이 국가의 부를 늘이기 위한 정책적 지향성을 화폐 획득이라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에 반대하는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애덤 스미스가 중상주의 학자들과는 다른 ‘국가’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상주의 학자들은 국가를 통치자의 권력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것에 반해 고전주의(자유주의)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는 국가를 ‘개인들의 총합’과 같은 개념으로 사용했다. 즉 이들은 서로 다른 국가주의적 지향을 갖고 있었던 것인데, 이는 마르크스의 반자본주의적 국가주의와도 비교하여 볼 필요가 있다. 국가주의는 근대 이후 모든 사회사상의 중심적 자원이었다.
케인즈는 공황에 대한 연구를 통해 시장 중심의 자유주의가 시장에 화폐를 공급하는 것이 고전학파의 이론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무엇보다 지급준비율이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대출에 의해 신용 확장이 발생해야 하는데, 불황에 진입하면 대출을 일으킬 주체들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화폐 공급이 작동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 이르면 국가는 직접 재정정책을 통해 시장에 화폐를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 중상주의자 케인즈의 주장이다.
국가의 시장 개입을 반대한다는 점에서 고전주의 경제학의 계승자로 여겨지는 시카고학파가 중앙은행의 통화량 조절을 지지하게 된 아이러니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형성된 역사적 산물이다. 시카고학파의 중앙은행 지지는 곧 부분지급준비금은행인 자유은행에 대한 지지이며, 따라서 이들의 국가주의는 자본과 시장이 최대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지켜주고 정당화해주는 존재로서의 국가를 가정하는 ‘자본주의적 국가주의’이거나 ‘시장 중심 국가주의’다. 그런 점에서 시카고학파는 신고전파라고 불리지만 국가의 배후에서 전쟁에 투자하던 중상주의적 국가주의의 후예다.
분산 공개장부와 가상화폐
2차 대전이 끝났을 때, 자본주의적 국가주의의 설계자들이 맞닥뜨린 문제는 국가주의를 완성할 ‘국가’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국가는 합법적 거래를 보장하여 ‘시장’을 작동하게 할 뿐아니라, 회계적 화폐를 시장에 공급할 메카니즘을 보장해 줄 권력이었다. 설계자들은 각 지역에 국가를 세울 뿐아니라 IMF를 통해 신생국 조차 회계적 화폐를 시장에 공급할 수 있는 글로벌한 체제를 완성시켰다. 중상주의자들의 후예인 현재 자본주의적 국가주의 설계자들에게 회계적 화폐의 전지구적 공급 시스템은 ‘국가’가 존재해야 하는 핵심적 이유였다.
가상화폐 역시 전지구적으로 회계적 화폐를 공급한다. 그러나 가상화폐는 부분지불준비금은행을 통해 신용화폐를 창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통화학파가 주장했던 것과 같이 중앙은행에 의한 지급 보장이나 기초 자산을 활용한 보장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가상화폐는 탈집중화된 회계적 공간 안에서 신용통화라는 사기극에 의존하지 않는 회계적 화폐를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 점에서 가상화폐의 경쟁자는 부분지불준비금은행의 설계자들이며, 이로 인해 발생한 신용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파생상품이라는 메타 회계적 화폐를 고안한 바로 그들이다. 양자 간의 경쟁은 새로운 공황에 의해 끝날 것이다. 공황은 모두가 믿고 있는 중앙은행 발권 화폐와 가상화폐 중에서 어떤 것이 가치를 견고하게 방어하는 화폐인지를 드러내 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