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청년정치의 현실
1 모두가 터틀넥을 입었던 그 시절
2011년도 쯤. 한 스타트업 기업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행사는 당시 유행이었던 소셜게임(SNS를 통해 친구를 모으고 친구들과 같이 하는 게임)을 기반으로 사업을 벌이는 많은 기업들이 참여하였습니다. 이 행사에서 저는 참여하신 기업의 사업담당자 및 CEO 분들에게서 특이한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이 터틀넥과 청바지를 입고 행사에 참여하였습니다. 심지어 당시에는 구하기 힘들었던 맥북으로 멋지게 키노트를 만들어 프레젠테이션을 한 CEO도 있었습니다.
이때는 애플의 CEO인 스티브 잡스의 전성기였습니다. 아이폰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그는 혁신의 아이콘이자 많은 사업가들에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그를 닮기를 원했고, 사업가들은 그가 했던 사업 방식을 국내에 적용시키려고 애쓰던 시기입니다. 얼마나 그를 닮고 싶었으면 그가 매년 열리는 애플 개발자 회의에서 입던 검은색 터틀넥과 청바지를 회사의 최고 경영자가 입고 올 정도였으니깐요. 윈도우와 안드로이드를 쓰는 것 보다 맥북과 아이폰을 사용하는 것이 자신이 앞서나가고 있다는 것을 남에게 증명하는 상징(실제로는 매우 뒤쳐져있다 할지라도….)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벌써 7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제 더 이상 스티브 잡스는 없고, 혁신의 상징과 다름없던 애플은 여전히 잘나가고 있지만 과거의 명성에 비해서는 그 빛을 잃어버렸고 , 후발주자들이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제 아이폰과 맥북은 수많은 전자상품 중 하나이며 이것을 사용한다고 해서 딱히 자신이 좀 더 멋있거나, 자신의 가치를 올려주는 시대도 아닙니다. 현재는 그런 겉모습보다는 인스타그램, 유튜브, 트위치 등을 통해 실제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나, 결과물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가치를 증명하는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사회도 그때와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 시기 사회는 모두가 자기 말을 할 수 없던 시기였습니다. 국가에서 말을 막은 것은 아니었으나 내가 무언가 말을 했을 때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은 그렇지가 않죠. 보수정권에서 민주정권으로 정권이 교체가 되면서 모두 자유로이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시대와 사회가 바뀌었다면 과연 정치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안타깝게도 정치는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그리 바뀌지 않은 느낌입니다. 정치일선에 나오는 정치인은 모두 깨끗하고 공정하고 어찌되었든 옳은 말만 늘어놓고 이야기를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저는 이것을 최근 있었던 민주당의 [청년전진대회]라는 곳에서 느꼈습니다. 시대와 사회는 바뀌었지만 정치만 아직 그대로라는 것을….
2 이것이 과연 청년을 위한 정치일까?
[2018 지방선거 필승 청년전진대회] 라는 매우 거창한 이름의 이 대회는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청년들의 요구 사항 (저에게 물어본 적은 없습니다.) 을 전달하는 의식, 퍼포먼스 그리고 임명장 수여식이 있었던 행사였습니다. 제가 이 행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바로 지방선거를 위한 특위 구성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특위란, 각 분야별 전문가가 모여서 지방선거에 맞춰 각 지방에 맞는 정책을 내놓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후보를 검증하는 역할이라 생각했습니다. (이게 당연한 건데..) 하지만 민주당에서 내려온 특위 리스트를 보면서 저는 불안한 마음 감출 수 없었습니다.
대충 한 특위에 위원장 / 부위원장 그리고 위원 두 명으로 구성하더라도 100명 이상은 족히 나올 지방선거 특위였습니다. 특위의 인원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과연 이 특위가 어떻게 협업을 하고 어떤 결과물을 목표로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일을 할 때 목표는 매우 쉽게 잡을 수 있으나, 그 목표를 향하는 방법 즉 어떻게 그 목표를 향해 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하기 매우 힘듭니다. 소수의 팀에서는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을 쉽게 결정할 수 있으나 무려 100여명이나 되는 특위 조직에서 과연 그런 결정이 가능할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습니다. 아마 저 특위를 구성했던 사람들은 특위 이름을 짓는데 3시간 고민, 어떤 사람이 특위에 들어가야 할 지 고민하는데 3분, 마지막으로 이 특위가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하는지 고민하는데 3초 걸렸을 거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500원 겁니다.)
이 불안한 마음은 본 행사에서도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은 자신이 지방선거에 무엇을 기여할 지, 자신이 출마하는 지방에 대한 정책 이야기보다 자신이 지방선거에 나가는 출마자임을 홍보하고 유명 정치인들과 사진을 찍는데 정신이 없었습니다. 청년의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퍼포먼스, 각종 축사 여기에는 요란하고 지루하고 매우 정치적인 구호만 있었을 뿐 정책은 없었습니다. 여의도 밖에서 주말에도 알바를 뛰는 청년들이 이것을 보고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요?
임명장 수여식은 이날 행사의 절정이었습니다. 엄숙하고 책임감을 부여해야 할 임명장 수여식은 무질서하고 시끄럽고 짜증나는 시장으로 변해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약 300여명의 인원이 이날 임명장을 받아 갔습니다. 저는 이날 임명장을 받고 사진을 찍는 순간이 저의 흑역사 중 하나라고 확신합니다. 매우 불쾌했고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임명장은 그에 걸맞은 사람이 받아야 하나, 이날의 임명장은 한마디로 과거 교회에서 면죄부를 뿌리듯이 임명장이 남발되었습니다.
3 문제를 해결하는 것의 시작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
미국 드라마 뉴스룸 1화에서는 그 유명한 “미국은 더 이상 위대한 국가가 아니다.” 라는 명장면이 연출됩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웰 메커보이는 미국이 위대한 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 가지 이유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의 시작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해 미국이 위대한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미국이 더 이상 위대한 국가가 아니다 라는 것을 인식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치 역시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정치에 참여하는 청년들은 현재의 정치가 무엇이 문제인지 솔직하고 담백하게 바라봐야 합니다. [청년전진대회] 때 제가 본 청년 정치인들은 2011년 스타트업 행사에서 본 CEO 와 사업담당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이 터틀넥과 청바지로 자신들을 스티브 잡스와 동일시했다면, 2018년 청년 정치인들은 정치인과의 사진 찍기와 임명장 남발로 자신들을 뽐냈습니다. 터틀넥과 청바지를 입고 자신을 뽐내는 CEO 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자신들을 뽐낸 청년 정치인들은 여전히 2018년에 존재합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모든 청년이 과거를 답습하는 청년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 행사가 보여준 실상을 국민이 특히 오늘도 힘들게 살아가는 청년들이 본다면 매우 실망할 것입니다. 무의미한 구호보다는 정책 토론을, 피켓을 든 퍼포먼스 보다는 밖에 나가 실제 삶의 무게를 느끼기를, 정치인과 사진 한 장 더 찍는 것 보다, 동네 신호등이 고장 났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사진 찍어 해결하는 정치가 청년정치였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