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아래> - 지루하지만 강렬했던 연극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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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란 국가가 얼마나 비현실적인 공간인지는 모두가 다 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사실들은 외부의 시각이 들어간 경우가 많다. 북한 관련 영상을 해석하고, 전문가들의 말로 살을 붙이는 그런 정보들이란 거지. 그런 의미서 <태양 아래>는 북한 내부에서 북한의 민낯을 제대로 보여줬다는 의의가 있다. 감독은 8살 진미의 삶을 통해 북한의 비합리적 상황을 적나라하게 전달한다. 북한 정부는 ‘태양절 준비과정과 북한 정권 홍보’란 감독의 말에 속아 넘어가 많은 비용과 인력을 제공하며 자신들의 비이성적인 면을 성실히 전달해줬다. 북한에 들어가 취재한 영상들도 많지만, <태양 아래>처럼 북한 정부가 스스로 자기들이 비정상 집단임을 열렬히 입증한 것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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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정보 없이 <태양 아래>를 보면 의아한 느낌이 든다. 동일한 씬이 반복되고 촬영을 진행해야할 감독이 스크린 안으로 자주 들어온다. 미 편집된, 혹은 잘못 편집된 영화 같다. 대사는 어색하고 배우들의 시선은 불안하다.

당연한 거다. 그들은 배우가 아니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되기 전, 그들은 기자였고 식당 노동자였다. 연기와 거리가 멀었던 존재들이 당국의 명령이란 이유만으로 대본을 쥐고 연기를 연습한다. 게다가 형식이 다큐멘터리니 대부분의 장면들은 지극히 일상적이다. 영화는 완성된 씬을 보여주고 이 씬이 어떻게 나왔는지 촬영과정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소개하는데, 별다른 사건조차 없는 장면을 여러 번 보여주니 지루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 지루함과 어색함이 북한이란 체제의 비합리성을 적나라하게 만들어준다. 북한은 ‘너무나 뻔해서 지루한 일상’까지도 조작하고, ‘민간인들의 어색한 연기’까지도 감수하며 자신들의 생각을 영상에 주입시킨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평범한 일상이 뚝딱 만들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일상이 철저하게 조작된 연극임을 안다. 영상이 지루하고 평범할수록 북한이 행하는 통제와 조작은 강력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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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통제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평범한 일가족이 촬영의 대상으로 결정된 순간 사는 공간이 바뀌고 부모들의 직업이 바뀐다. 노동부터 교육, 밥을 먹는 일상까지도 북한 당국의 통제하에 놓인다. 조작은 주인공인 진미 가족에게만 이루어 지는 게 아니다. 아침 출근길이라는 일상적인 장면을 위해 노동자와 버스를 동원한다. 평범해 보이는 장면마저도 조작이 숨겨져 있다. ‘다음에는 무슨 말을 해야하지?’라는 전쟁 영웅의 질문은 그들의 행위가 자의적인 판단에서 나오지 않음을 단 번에 보여준다. 감독은 이 광경을 그대로 담아낸다. 영화를 볼수록 북한에 대한 불신은 커져가고, 불신의 범위는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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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얼핏얼핏 북한 시민의 삶을 보여주기도 한다. 공연을 준비하는 진미의 모습, 버스에 타는 승객들,거리에 정렬한 사람들 등 평범한 일상들이 조작 과정 사이사이에 삽입된다. 그러다보니 그 평온한 일상조차도 믿을 수가 없다. 저 행위가 '자신의 의지로 하는 행동'인지, '국가의 명령으로 하는건데 감독이 미쳐 조작 행위를 못찍은 것인지' 어떻게 알아? 불신은 북한이 외부로 보여주는 행위들로 퍼져간다. 외국인이 개입한 다큐에서도 대놓고 조작을 시도하는데, 그들이 직접 보여주고 선전하는 얼마나 더 심하겠어. 영화는 100분 남짓에 불과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내용은 ‘북한‘이란 국가 전체의 부조리를 꿰뚫어는다. 집단의 영광을 위해 개인의 삶을 세세하게 통제하는 국가는 정상이 아니다. 그 국가에 세뇌되어 통제에 순응하는 국민들에게는 동정심이 든다. 영상은 지루하지만, 그 지루함을 뚫고 보여지는 북한의 실상은 어떤 자료들보다 강렬하고 충격적이다.

영화 마지막, 소년단 활동 중 좋은 점이 뭐냐는 질문에 진미는 고민을 거듭하며 힘겹게 답변을 한다. 그 과정이 힘들었는지 답변을 마친 진미가 눈물을 흘린다. '좋은 것에 대해 생각해보라'라는 질문에 '모르겠다'고 답변한다. 그게 영화에서 유일한 순수하고 진실했던 반응이었다. 울면서 흔들리는 진미를 달래기 위해, 감독은 '시를 생각해보라'라고 말한다. 그러자 그녀의 입에서는 김일성을 소년단 선서문이 나온다. 영화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으나, 8살 소녀의 입에서 나오는 '시'는 지극히 전체주의적이다. 북한은 상상보다 더 비정상적이고, 이 영화는 예상보다 더 강렬하다.

p.s) 감독 비탈리 만스키는 영화 공개 후, 진미에게 "다시 보고 싶으니 북한에 꼭 와달라"는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감독은 "나는 그정도로 어리석지 않다"며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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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시라도 말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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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보팅 살짝하고 갑니다~ㅎ

꼭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지루하긴 해도 흥미로운 작품이에요 ㅋㅋ 보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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